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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엄마 여행

한국전쟁 70주년:오산 죽미령 전투의 기억을 담은 <스미스 평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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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미령 전투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북한군은 계획대로 사흘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남침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나 전쟁 발발 10여일 만인 7월 5일 오산에서 복병을 만나게 됩니다. 예상에 없던 미군이 참전한 것으로 이 사건이 바로 죽미령 전투입니다.

 

 

 

202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70주년

이 뜻깊은 해  7월 5일 
정식 개관을 앞두고 있는 

 스미스 평화관을 둘러보았습니다.

곁에 있는 유엔군 초전기념관과
 하루에 둘러보시면 
좋겠습니다. 

아이와 함께라면 더더욱 

의미있는 시간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개관식 때에는
정문앞에 있는 이 물가에,
아이들이 만든 파란색 배를 띄우는
행사도 계획중이라고 해요.

저희도 한 척 만들고 왔답니다.

 

 

 

 

키즈룸

 

 

 

어린이 체험관

 

 

 

 

전쟁이야기-VR체험관

6 · 25전쟁이 발발하자 미 극동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6월30일 '지상군의 한반도 투입'을 건의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규슈 지방에 주둔하고 있던 스미스 부대(미군 24사단 제21연대 1대대)가 곧바로 한국전쟁에 투입됩니다.  540명으로 구성된 특수임무부대 '스미스 부대'는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도착해 7월5일 새벽 오산 죽미령 고개에 진지를 구축합니다. 

 

부산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의
상황을 VR로 체험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스미스부대 540명, 5천명을 상대하다.
'전략에서는 성공한 전투'

스미스 부대는 모든 화기를 투입했지만, 5천여명의 보병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철수명령을 받고 모인 부대원은 185명에 불과했습니다. 부대는 천안으로 이동해 병력을 재정비했으며, 종전까지 다양한 한국전에 참전했습니다. 단 4대의 전차를 무력화한 것이 전투의 성과였지만, 이 전투는 6시간 15분간 계속되었습니다. 단 25일만에 전투를 끝낼 것이라던 북한의 계획은 죽미령 전투로 인해 3년 1개월 3일까지 미뤄졌습니다.

 

 

 

스미스부대 참전용사들은 종전 후
1955년 한국을 방문해 죽미령에 
(구)초전기념비를 건립하였고,
1982년 정부는 (신)초전기념비를 
건립하였습니다. 

이후 2013년에는 
유엔군 초전기념관이 개관하였으며,
그 일대를 평화공원으로 조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스미스평화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이제는 생존자조차 많지 않은 상황.

백발노인이 된 그 분들의 
인터뷰가 담긴 영상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내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준
대한민국에 감사하다."

 

 

 

 

 

 

전시를 마치고 나와 
죽미령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 코스였지만,
우리는 마다하지 않았어요.

 

 

 

멀리 활주로가 보입니다.

 

 

 

 

 

내려가는 길은 깔끔한 데크로드.

정식으로 개관한 상황이 아닌데다, 
코로나까지 덮친 시국. 

키즈룸과 카페, VR체험장이  
임시 휴장을 하였지만, 

아이와 함께 전쟁의 아픔과 
살아남은 자들의 절절한 기록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지금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은  
희생 위에 존재하는 것인지, 
소중한지에 대해 
아주 짧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답니다.

 

현충일을 몇 일 앞둔 어느 날.